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비드 벤구리온 (문단 편집) === 전쟁 범죄 실체 논란 ===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 전쟁]] 당시 벤 구리온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지시하였는지의 여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벤 구리온이 [[인종 청소]]를 지시했다는 심증은 있고, 실제로 팔레스타인 내에서 일부 학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아랍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군이 완전 철수하며 영국의 위임통치가 공식적으로 종료되기 이전에 이미 유대인 민병대인 이르군과 슈테른갱이 벤구리온이 통솔하던 유대인 민병대인 하가나의 묵인과 지원 하에 팔레스타인 중부에 위치한 데이르 야신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데이르 야신 마을의 유지들이 당시에 이미 유대인들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이후 들이닥친 공격대의 학살에 최소 107명의 마을 주민들이 학살되거나 처형되었다. 학살은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피해자의 대부분이 비무장 민간인들이었다. 민병대 장교 한명이 학살을 중지하도록 명령한 뒤에야 포로로 잡힌 마을 사람들은 유대인 주민들의 공개적인 모욕과 욕설을 들으며 예루살렘의 아랍인 거주지역까지 강제로 걸어간 뒤 풀려날 수 있었다. 이 데이르 야신 마을 학살 사건에 대한 소식은 아랍 세계 전역에 빠르게 퍼졌고 이후 팔레스타인 북부 항구도시인 하이파가 유대인 민병대에게 점령당한 뒤에는 위임통치령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한 학살과 잔학 행위는 꾸준히 빈번하게 계속되었고 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중 85%에 달하는 70만명 이상이 가자지구나 서안지구 등지로 쫓겨나 난민이 되었고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 난민의 귀환을 막기 위해 400개에서 600개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아랍 마을들을 거의 완전히 파괴하였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 점령지를 떠나서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에 정착하게 된 난민들을 기원으로 한다.[* [[https://en.m.wikipedia.org/wiki/Deir_Yassin_massacre|영문 위키백과 출처 페이지 링크 1]], [[https://en.m.wikipedia.org/wiki/Killings_and_massacres_during_the_1948_Palestine_war|2]], [[https://en.m.wikipedia.org/wiki/1948_Palestinian_exodus|3]], [[https://en.m.wikipedia.org/wiki/Nakba|4]],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towns_and_villages_depopulated_during_the_1947%E2%80%931949_Palestine_war|5]]] [* 유진 로건, 이은정 옮김,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까치글방, 2016;개정판 2022)] 다만 일부 지역에 한해서만 소수의 아랍인들이 잔류를 허용받아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나 일부 인근 마을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있어서 중요하게 간주되던 지역이었고 기독교를 믿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높은 비율로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속한 교회와 서구 국가들 또는 [[바티칸]] 등의 관계와 교류 등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여론에 대한 고려 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부 마을들에 한해서는 원래 거주하던 주민들이 운좋게 추방을 면하거나 추방을 당했어도 다시 이스라엘 지역이나 원 거주지로 귀환하는 것이 허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잔류를 허용받은 아랍인들 중에서도 25% 정도는 자신들이 원래 살던 마을로는 돌아가지 못했고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난민이 된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ople)으로 남게 되었다.[* [[https://en.m.wikipedia.org/wiki/Present_absentee|영문 위키백과 출처 페이지 링크]]] 또한 이스라엘은 1966년까지 자국 내의 모든 아랍인들을 혹독한 군사 계엄령에 따라 통치하였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자국 내의 모든 아랍인들의 토지를 자신들 마음대로 압류하거나 아랍인들의 자본 투자와 취업과 같은 경제기반을 모두 통제할 수 있었으며 아랍인 시민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거의 완전히 차단하였다. 이 기간동안 아랍인 시민들은 허가증 없이는 여행조차 할 수 없었으며 통행 금지령과 강제 구금, 강제 추방과 같은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이 군사 계엄령을 해제하는 1966년까지 지속되었다.[* [[https://en.m.wikipedia.org/wiki/Palestinian_citizens_of_Israel|영문 위키백과 출처 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